지난 글에서는 해면에서 추출한 스피큘이 어떻게 화장품 원료로 활용되고, 피부 관리에 어떤 효과를 주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목욕용 스펀지로만 알았던 해면이 사실 스피큘의 원재료라는 점에서 많은 분들이 흥미로워하셨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해면 이야기를 여는 첫걸음에 불과합니다. 이번 2편에서는 해면 그 자체에 집중해, 바다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디에 서식하고 어떻게 재배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잘 몰랐던 해면의 또 다른 활용과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해면이 바다에서 하는 역할과 환경 지표로서의 가치
해면은 바닷속에서 물을 정화하고 생물들에게 서식처를 제공하는 중요한 해양 생물입니다. 미세한 구멍을 통해 바닷물을 빨아들여 그 안에 포함된 미세 유기물, 세균, 플랑크톤을 걸러 먹으며, 하루 동안 자기 부피의 수천 배에 달하는 물을 여과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바다 수질이 개선되고, 주변 생태계의 건강이 유지됩니다. 해면의 다공성 구조는 작은 갑각류, 미세 조류, 해양 무척추동물 등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 공간이 됩니다. 흥미롭게도 해면은 환경 지표 생물로도 쓰입니다. 수질 오염이나 환경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 건강한 바다에서는 크고 활발하게 성장하지만, 오염된 환경에서는 성장 속도가 느려지거나 색이 변하며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따라서 해면은 단순히 바다의 한 생물이 아니라, 해양 환경의 변화를 보여주는 자연의 센서이자 수질 정화 시스템입니다. 이러한 특성은 해면이 화장품 원료로 사용될 때도 ‘자연 친화적인 원료’라는 신뢰감을 더해 줍니다.
해면의 서식지와 재배 지역
해면은 전 세계 바닷속 암반, 산호초, 모래 바닥 등 다양한 환경에서 서식하며, 수심이 얕고 햇빛이 잘 드는 연안에서 주로 발견됩니다. 지중해, 카리브해, 인도양, 태평양 일부 해역이 대표적인 서식지이며, 깨끗하고 유속이 완만한 바다에서 자란 해면일수록 질감이 부드럽고 크기가 큽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해와 제주 연안에서 드물게 발견되지만 상업적 채취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해양 생태계 보전과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해면 양식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해면은 특이하게도 몸 전체가 줄기세포와 같은 성질을 가져, 일부만 잘라도 남은 부분이 다시 자라고, 잘라낸 조각도 다른 곳에 고정되면 독립된 개체로 성장합니다. 이 재생 능력 덕분에 양식업자들은 큰 해면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암반이나 로프에 묶어 키우며, 몇 개월에서 몇 년 후 수확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자연 개체군을 훼손하지 않고도 고품질 해면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어 친환경 채취 방법으로 인정받습니다.
근대와 고대의 해면 채취 및 스피큘 제거 방식
고대와 근대에 걸쳐 해면은 다양한 방식으로 채취되고 가공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숙련된 잠수부들이 맨몸으로 깊은 바다에 들어가 해면을 채취했습니다. 당시에는 산소통이나 잠수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오직 폐활량과 잠수 기술이 생계를 좌우했습니다. 채취한 해면은 햇볕에 널어 부패를 막았으며, 이 과정에서 일부 스피큘이 자연적으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어서 바닷물에 반복적으로 헹구고, 나무나 돌로 두드려 불순물을 제거해 부드러운 단백질성 조직만 남겼습니다. 중세 이후에는 해면을 끓는 물에 데친 뒤 잿물이나 약한 알칼리 용액에 담가 스피큘을 제거하는 방식이 도입되었습니다. 이렇게 가공된 해면은 부드럽고 흡수력이 뛰어나 목욕, 세안, 상처 세척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당시에는 스피큘이 피부를 자극한다는 이유로 제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오히려 스피큘의 물리적 자극 효과가 피부 재생과 각질 개선에 도움 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화장품 원료로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자연에서 해면을 만날 때 주의할 점
바다에서 해면을 발견했을 때 대부분의 경우 맨손으로 만져도 큰 위험은 없습니다. 해면은 독을 분비하지 않고 신경계가 없어 고통을 느끼지 않는 해양동물입니다. 그러나 표면에 있는 규산질·석회질 스피큘이 피부에 미세한 상처나 따끔거림을 유발할 수 있어, 피부가 민감하거나 상처가 있는 경우 장갑 착용이 좋습니다. 해면 표면에는 작은 갑각류나 해양 생물이 붙어 있을 수 있어 알레르기 반응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해면은 바다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함부로 뜯어내면 해당 지역의 생물 다양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일부 국가나 지역에서는 해면 채취가 법적으로 금지되거나 제한되므로, 발견 시 사진 촬영이나 잠시 관찰하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특히 야생 해면은 환경 지표로서도 의미가 크기 때문에, 보존과 보호가 필요합니다. 아름다운 바다 속 생태를 오래 유지하려면, 해면을 존중하고 불필요한 채취를 피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해면에서 추출되는 다른 유용 성분
해면은 스피큘 외에도 다양한 유용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의학과 화장품 연구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일부 해면 종에서는 항균, 항바이러스, 항암 활성 성분이 발견되어 신약 개발의 후보 물질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해면에서 유래한 아라비노스 계열 화합물은 특정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 사용된 사례가 있습니다. 또한 해면의 단백질성 섬유와 해양 콜라겐은 피부 보습과 탄력 개선을 돕는 화장품 원료로 활용됩니다. 해면의 다공성 구조를 활용해 각질 제거용 스크럽이나 필링제로 개발한 제품도 있으며, 이러한 구조는 물리적인 자극 없이도 불필요한 각질을 부드럽게 제거하는 데 유리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성분과 구조적 특징은 해면이 단순히 스피큘의 원료 공급원에 그치지 않고, 피부 관리와 의학 치료 모두에서 중요한 잠재력을 가진 해양 바이오 소재임을 보여줍니다. 앞으로 해양 생물 연구와 가공 기술이 발전할수록 해면의 활용 범위는 더 넓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번 글을 통해 해면이 가진 다층적인 가치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활용 가능성을 살펴보았습니다. 해면은 단순한 생활 도구를 넘어, 바다 생태계와 인류 생활 모두에 연결된 매개체이자 지속가능성의 상징입니다. 자연에서 나와 다양한 용도로 쓰이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더라도, 미세플라스틱과 달리 바다에 잔존하거나 해양 생물에 장기적으로 축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순환형 자원’이라 부를 만합니다. 이렇게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수천 년간 우리 곁에 있었던 해면이 앞으로 어떤 새로운 발명과 원료로 발전할지, 그 가능성이 더욱 기대됩니다.